'가마'는 한국어에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동음이의어로, 문맥에 따라 탈것, 도자기 소성 시설, 머리의 소용돌이 모양, 가마솥, 곡물 단위 등을 가리킨다.
1. 탈것으로서의 가마
가마는 조그마한 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탈것으로, 안에 사람이 들어 앉고 앞뒤에서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가마에 붙은 가마채를 들거나 끈으로 매어 운반한다. 대개 가마뚜껑, 가마바탕, 가마채로 이루어지며 방석이 곁들여진다. 가마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는 연(輦), 덩, 가교(駕轎), 사인교(四人轎), 보교(步轎)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가마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신라 기와에 바퀴 달린 연 비슷한 것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 안악3호분의 벽화에도 가마에 앉아 있는 주인과 부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의 품계에 따라 가마의 종류와 이용에 차등을 두는 교여지제(轎輿之制)가 있었다. 평교자는 일품과 기로(耆老)가, 사인교는 판서급 관리가, 초헌은 종2품 이상이, 남여는 3품 승지급 이상이 이용하였다. 현대에도 동아시아의 일부 관광지에서 관광용 가마가 운용되고 있다.
2. 도자기 소성 시설로서의 가마
가마는 토기 및 도자기를 구워 내는 시설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사시대에는 가마 시설이 없어 노천에 토기를 쌓아놓고 나무를 태워 그릇을 구웠는데, 이 방식은 산소 공급이 많아 철분이 산화되어 붉은색 토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고온을 낼 수 있는 지붕을 가진 움집 같은 실요(室窯)와 언덕 경사면에 길게 만들어진 터널형의 등요(登窯)가 발달하였다. 삼국시대의 토기는 등요를 모체로 발전하여 섭씨 1,10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할 수 있는 가마에서 만들어진 회흑색 경질토기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충청북도 진천군의 산수리가마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의 산북리가마가 있다.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등요 외에도 가스가마, 기름가마, 전기가마 등 현대적인 구조의 가마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3. 머리카락의 소용돌이로서의 가마
가마는 사람의 머리 정수리 부근에서 머리카락이 한 곳을 중심으로 빙 돌아나 소용돌이 모양으로 난 자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말이나 소 등 짐승의 대가리에도 나타날 수 있으며,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가마의 개수와 방향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4. 가마솥으로서의 가마
가마는 밥을 짓거나 국 등을 끓이는 데 사용하는 대형 무쇠 솥인 가마솥을 줄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전통적으로 가마솥은 다리가 없고 솥 바닥이 둥글며 입구 가장자리가 약간 오므라든 형태였다. 현대에 와서는 무쇠 가마솥이 전통 조리 기구로 일부 가정과 식당에서 사용되고 있다.
5. 곡물 단위로서의 가마
가마는 곡식을 담는 용기인 가마니를 세는 단위로도 쓰인다. 가마니는 볏짚으로 꼰 새끼를 짜서 자루 형태로 만든 용기로, 주로 쌀·보리 등의 곡식이나 소금, 비료를 보관·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 근대에 일본어 'かます'(가마스)에서 유래한 용기로, 일제강점기에 쌀 수탈 과정에서 단위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 1가마니는 약 80kg에 해당하며, 곡물 거래 단위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가마'는 한국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어휘로, 교통, 공예, 신체, 조리, 계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