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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 통첸 율숭

가르 통첸 율숭(티베트어: མགར་སྟོང་བཙན་ཡུལ་སྲུང༌།, 와일리: mgar stong btsan yul srung, 중국어: 噶爾·東贊域松, 590년~667년)은 7세기 티베트 제국(토번)의 장군이자 재상(뢴첸, Lönchen)이다. 중국 역사서에는 그의 이름을 록동찬(祿東贊) 또는 론동찬(論東贊)으로 기록하고 있다.

출신 및 가문

가르 통첸 율숭은 티베트의 유력 가문인 가르(Gar) 씨족 출신으로, 현재의 중국 티베트 자치구 메이조쿵가르 현(Maizhokunggar County) 지역에 기반을 두었다. 그의 다섯 아들(가르체녜 돔푸, 가르친링 첸드로, 가르첸바, 가르타구 리숨, 가르체녠 궁톤)은 모두 티베트 제국의 유명한 장군으로 활동하였다.

생애 및 업적

가르 통첸 율숭은 제33대 첸포(황제)인 송첸 감포(Songtsen Gampo) 재위 시기에 대론(大論, 고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법제 정비, 군인과 노예 계급의 구분을 엄격히 하는 제도 개혁, 조세 정책 개혁 등을 추진하였다. 또한 티베트 내의 강족 세력과 토욕혼(吐谷渾)을 정복하여 티베트 고원 통일에 기여하였다.

당나라와의 외교 및 혼인 정책

638년 토번은 약 15만 대군을 편성하여 당나라의 송주(松州, 현재의 쓰촨성 지역)를 포위하였다. 당 태종 이세민이 군대를 파견하여 토번군에 1천 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이후에도 토번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640년 가르 통첸 율숭은 직접 당나라 수도 장안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황금 5천 냥과 보물을 바치며 송첸 감포와 당나라 공주의 혼인을 요청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당 태종은 여러 나라 사신들에게 여섯 가지 시험(육시혼사, 六試婚使)을 내었고, 가르 통첸 율숭은 지혜로 모든 시험을 통과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시험에는 구멍 난 돌에 실을 꿰기, 어미와 새끼 말/닭을 짝짓기, 하루 동안 술과 고기를 소비하며 양가죽 벗기기, 소나무 재목의 위아래 구분하기, 밤중에 대궐 길 찾기, 수많은 여인 중에서 문성공주 찾아내기 등이 포함되었다. 그 결과 당 태종은 문성공주(文成公主)를 송첸 감포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당 태종은 가르 통첸 율숭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 임명하고 장안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그는 이를 완곡히 거절하였다.

송첸 감포 사후의 활동

650년 송첸 감포가 사망하고 그의 손자 망송 망첸(Mangsong Mangtsen)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가르 통첸 율숭은 섭정으로서 국정을 총괄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653년 조세 개혁, 654년 인구 조사, 655년 티베트 최초의 법률 제정 등을 시행하였다. 660년에는 둘째 아들 가르친링에게 군사를 주어 토욕혼을 공격하게 하였고, 663년에는 직접 토욕혼을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이로써 토번은 오늘날의 칭하이성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티베트 고원 전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사망

가르 통첸 율숭은 667년, 라싸로 돌아가던 도중 목암(neck cancer)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가르 씨족은 티베트 제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였으나, 이후 황실과의 갈등으로 숙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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