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모리 나가치카(일본어: 金森 長近, かなもり ながちか, 1524년 ~ 1608년 9월 20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까지 활동한 무장이자 다이묘이다. 히다 다카야마 번(飛騨高山藩)의 초대 번주이다.
생애와 출신
가나모리 나가치카는 1524년(다이에이 4년), 미노국 도키군 다지미향 오바타촌(현재의 기후현 다지미시 오바타정)에서 가나모리 사다치카(金森定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고로하치(五郎八)였으며, 초명은 아리치카(可近)였다. 가나모리 씨는 미노 겐지(美濃源氏) 도키 씨(土岐氏)의 지류로 알려져 있다.
부친 사다치카는 도키 씨의 후계 분쟁에서 도키 요리타케(土岐頼武)를 지지했으나, 요리타케가 도키 요리노리(土岐頼芸)에게 패하여 실각하면서 미노를 떠나 오미국 야스군 가나모리(현재의 시가현 모리야마시 가나모리정)로 이주하였다. 이 지역의 지명을 따서 성을 가나모리(金森)로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주군과의 관계
가나모리 나가치카는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도쿠가와 히데타다(秀忠)를 차례로 섬겼다.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나가(長)' 자를 하사받아 나가치카(長近)로 개명하였다. 노부나가의 친위대인 아카호로슈(赤母衣衆)의 일원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히다 다카야마 번과 도시 건설
1586년(덴쇼 14년)경 히다 다카야마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다. 히다 다카야마성(飛騨高山城)을 축성하고 성시(城下町)를 정비하여, 현재의 다카야마시(高山市)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후쿠이현 오노시(大野市)와 기후현 미노시(美濃市)의 성시 정비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통치 아래 조성된 도시 구조는 현대까지 이어져, 다카야마시와 미노시의 옛 거리 풍경은 관광 명소로 유명하다.
가족과 후계
아들로 나가미쓰(長光) 등이 있었으며, 양자로 가나모리 아리시게(金森可重)를 두었다. 아리시게는 1585년(덴쇼 13년) 부친 나가치카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라 부야마 전투(富山の戦い)와 히다 정벌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이후 나가치카의 뒤를 이어 히다 다카야마 번의 2대 번주가 되었다.
사망
1608년(게이초 13년) 음력 8월 12일, 향년 84세(또는 85세)로 사망하였다. 계명은 金龍院殿前兵部尚書法印要仲素玄大居士이다. 관위는 히다노카미(飛騨守)였다.
역사적 평가
가나모리 나가치카는 전장에서의 화려한 무공보다는 영국 경영과 도시 건설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실무형 무장으로 평가된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세 명의 천하인을 차례로 섬기며 전란의 시대를 장수한 인물로, 그의 통치 시기는 '가나모리 시대'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