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가계는 한국어에서 여러 한자 조합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동음이의어이다. 주요 의미로는 경제적 의미의 가계(家計), 혈통·계통적 의미의 가계(家系), 그 외에 흔히 쓰이지 않는 가계(家鷄, 집에서 기르는 닭)와 가계(家繼, 집안의 대를 이음) 등이 있다.
1. 가계(家計) — 경제적 의미
가계(家計)는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을 바탕으로 상품의 최종 소비 활동을 영위하는 경제 주체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세대(世帶)를 기본 단위로 하며, 세대는 생계를 함께하는 일단의 동거인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경제학에서 가계는 기업, 정부와 함께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3대 경제 주체 중 하나로 분류된다.
가계는 자원·목표·가치관을 공유하는 가족 구성원을 통해 자원을 획득, 배분, 소비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경제 단위이자 하나의 체계로서 소비자 단위로 기능한다. 가계 활동의 주요 내용은 소득을 획득하고, 그 소득을 소비 지출로 배분하며,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사용하는 것이다.
가계는 가족 구성원의 인적·물적 자원을 사회에 제공함으로써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소득을 획득하는 한편, 저축과 소비 활동을 통하여 소득을 처분한다. 즉, 노동·자본·토지와 같은 생산 요소를 제공하여 재화의 생산에 참여하고, 그 보수로 임금·지대·이자·이윤 등의 소득을 분배받아 욕구 충족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한다.
가계와 기업, 정부의 관계는 상호 유기적이다. 가계는 기업에 생산 요소를 제공하고 기업은 그 대가를 가계에 지불하며, 생산된 재화를 다시 가계에 공급한다. 가계는 정부에 각종 조세를 납부하고, 정부는 의무교육·사회보장·공공사업 등의 서비스를 가계에 제공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국민경제가 형성된다.
경제학에서는 가계의 소비 특성에서 여러 이론적 법칙이 도출되었다. 대표적으로 소득이 높아질수록 총지출에서 식료품비의 비중이 낮아진다는 엥겔의 법칙, 소득이 적을수록 총지출에서 주거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슈바베의 법칙 등이 있다. 이러한 가계 기반 이론들은 근대 경제학 소비 이론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가계는 소비의 주체로서 공동 소득에 의존하는 특징을 지니며, 소비 활동을 통해 생산 확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가계의 저축은 자본 동원의 근본이 되어 기업의 투자와 생산 활동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가계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성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경제 주체로 평가된다.
가계의 살림 형편을 기록하는 도구로는 가계부(家計簿)가 있으며, 이는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장부를 의미한다.
2. 가계(家系) — 혈통·계통적 의미
가계(家系)는 혈연적 유대의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의 출계(出系) 원리에 따라 인지되거나 제도화되어 내려오는 한 집안의 계통 체계를 가리키는 가족학 용어이다. 가계는 선대의 입장에서는 대를 물린 결과이며, 후손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선대를 인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성(姓)을 근간으로 하는 부계적 혈통의 대물림이 강조되었다. 특히 고려 말 도입된 성리학에 따라 남송의 종법(宗法)이 사대부가의 제의에 적용·정착되면서 부계적인 가계 인식이 더욱 강화되었다. 종자(宗子)만이 제사를 주관하는 원칙이 확립되고, 입후자를 친자로 하여 제사를 받드는 승중봉사(承重奉祀)의 적계주의 원칙이 정립되었다.
가계의 유대 관계를 밝힌 족보는 종으로는 혈통 관계를, 횡으로는 동족 관계를 기록하여 직계친과 방계친, 존속친과 비속친을 구별하였다. 전통사회에서 양반·귀족 계층은 사회적 특권이 세습되었으므로 족보를 통해 가계상의 신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계의 형성과 계승은 전통사회의 모든 백성에게 해당되었던 현상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계의 확립이 신분 상승과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가치관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반 평민에게까지 점진적으로 확산되었다.
가계와 관련된 파생 개념으로는 가계도(家系圖, 한 집안의 계통을 나타낸 그림)가 있다. 가계도는 한 가계의 뿌리와 후손들의 관계망을 보여 주는 계보 기록으로, 전근대 한반도에서 신분적 우위, 특히 혈통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3. 기타 의미
그 외에도 가계는 집에서 기르는 닭을 뜻하는 가계(家鷄), 집안의 대를 이음을 뜻하는 가계(家繼) 등으로 쓰이기도 하나, 이러한 용례는 현대 한국어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
어원
'가계'는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이다. 가계(家計)는 '집 가(家)'와 '셈할 계(計)'로 이루어져 '집안의 살림을 셈함'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가계(家系)는 '집 가(家)'와 '이을 계(系)'로 이루어져 '집안의 계통'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참고 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계(家計)」, 「가계(家系)」
- 위키백과, 「가계」
- 최재석, 『한국가족연구』(민중서관, 1965)
- 이기춘, 『가정경제학』(교문사, 1991)
- 최재석, 『한국가족제도사연구』(일지사, 1983)